<제1회 치매가족수기원고>

                      "우리들의 겨울이 눈보라 치는 빙판길 겨울이 아니길"(3)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또 집을 나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인지 통장이나 열쇠,
기타의 물건들이 없어져도 그렇게 잠을 못 재우면서 찾아 달라고 화내고, 닦달하며
신경질 적인 것이 조금 줄어들었다. 어떤 편안한 날에는 어머님의 아버지를 회상하시면
서 부모에게 잘 못한 죄 값을 내가 받는다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 반성하는 기회를
삼으시기도 했다. 어머니의 염려와 걱정은 자신의 아버지가 이 병으로 집을 나가셔서
결국 객사를 하셨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외모, 성격 모두를 아버지와 똑같이 닮은
자신에게도 이 병이 왔고 결국은 아버지처럼 죽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항상 어머니
를 괴롭힌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병든 자신을 업신여길 수도 있다는 걱정과 함께 외로
움, 삶을 되돌아보았을 때의 아쉬움이 병든 어머니를 더 힘들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틱현상으로 인한 주위 사람들의 항변, 어눌한 의사소통과 대화에서의 단절, 그로인해
자꾸 왜 그러냐는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더욱 어머니를 의기소침하게 만들어 사회로부터
, 관계로부터 더욱 자신 자신을 닫는 것이다. 그것이 마지막 어머니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하시는 것 같다. 그럴수록 외로움이 깊어지고 결국 자식에
게 기대하지만 바쁜 자식들은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만족을 줄 수 없고 또 다시 소원한
마음이 원망과 절망으로 절규하기에 이른 것이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그리고 자신의 영혼을 잃어버리는 지구상의 가장 무서운
치매라는 병이 결국 고리와 고리를 물고 서로의 영혼에 생채기를 내는 것이다.
알면 알수록, 깊어지면 더욱 깊어질수록 본인뿐만 아니라 그 주위의 가족들의 심신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병, 21세기 천형과도 같은 무서운 병.
그러나 요즘은 서로가 서로에게 그리 크게 기대하지 않고, 서로 적응하는 방법을
터득했는지 지난 1년보다는 조금 수월한 느낌도 든다. 또한 이번에 대학병원에서
바뀐 치매약이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 더 편안하게 도움을 주는 신약인지도 모르겠다.

늘 두려워만 하고,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그 어떤 하나의 행동도 하지 않는 우매함은
더 큰 시련과 좌절을 가져다 줄 수 밖에 없다. 원인이 있으면 그 원인에 대한 결과도
치료도 가능하기 마련. 줄기세포 연구, 난치병 치료와 관련된 획기적인 의료기술 등,
우리들에겐 미지의 병에 대한 두려움과 발맞춰 의료 기술의 발전도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 작은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치매 환자의 고통과 그와 함께 그 고통을
고스란히 받고 있는 가족들의 삶을 한 개인의 문제로, 가정의 문제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국가적인 대안과 방안이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조기 진단 시스템과 정서적
지원 프로그램, 치매 환자들을 위한 통합적인 치료 시스템들이 필요하며 가족들을 위한
지원, 지지 프로그램도 활성화 되어야 할 것이다. 그들 개인과 가정의 지원이 곧 전체
가족과 사회의 디딤돌과 주춧돌이 된다는 사실은 선진 외국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초고령화 사회를 맞고 있는 한국의 고령화 준비대책의 시작인 것이다.

지금도 치매라는 무서운 병마와 싸우고 있는 이 땅의 모든 환자와 그들 가족이 하루라도
고통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과 대안이 마련되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날을 소망하며
다시 한번 바람이 불어도 일어 나 본다.

-치매가족지원정보망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