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노인의 편지 -
2007.10.8일자 부산일보 '부일시론'에 이해인 수녀님의 이 시가  실렸습니다.
노인 인구가 많아가는 이 시대에 나이 많은 노인의 입장에서 수녀님이
쓴 글 중에 이 시가 쓰여 있습니다. 우리 부부가 올해 70의 나이가 되고
또 연세가 98인 장모님을 모시고 있는 처지라서 그런지 깊은 감동을 받으면서
돌아가시는 날까지라도 장모님을 잘 모셔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노인의 편지--이해인--

사랑하는 나의 아들딸들
그리고 나를 돌보아주는 친절한 친구들이시어
나를 마다 않고 살펴주는 그 정성
나는 늘 고맙게 생각해요
하지만 그대들이 나를
자꾸만 치매노인 취급하며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교육시키려 할 적 마다
마음 하 구석에선
꼭 그런 것은 아닌데-
그냥 조금 기억력이 떨어지고
정신이 없어진 것 뿐인데
하고 속으로 중얼거려 본다오
제발 사람들 많은 자리에서
나를 갓난아기 취급하는
언행은 좀 안 했으면 합니다
아직은 귀가 밝아 다 듣고 있는데
공적으로 망신을 줄 적엔
정말 울고 싶답니다
그리고 물론
악의없는 질문임을 나도 알지만
생에 대한 집착이 있는지 없는지
은근 슬쩍 떠보는 듯한 그런 질문은
되도록이면 삼가주면 좋겠구려
어려운 시험을 당하는 것 같아
내 마음이 편치 않으니
어차피 때가되면
생을 마감하고 떠나갈 나에게
떠나갈 준비는 되어 있느냐
아직도 살고 싶으냐
빙빙 돌려 물어 본다면
내가 무어라고 답을 하면 좋을지?
더 살고 싶다면
욕심 많은 늙은이라 할 테고
어서 죽고 싶다면
우울하고 궁상맞은 푸념쟁이라 할 테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의 숨은 비애를
살짝 감추고 사는 지혜가
아직은 턱없이 부족하여
내가 가끔은 그대들이 원치 않는
이기적인 추한 모습
생에 집착하는 모습 보일지라도
조금은 용서를 받고 싶은 마음이지요
하늘이 준
복과 수를 다 누리라 축원하고
오래 살라 덕담하면
좋다고 고맙다고
겉으로는 웃으며 대답하지만
속으로는 나도 이미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
가능하면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는
평온한 죽음을 맞게 해 달라
간절히 기도하고 있음을 알아 달라고
오늘은 꼭 내 입으로 말하고 싶었다오
그러니 부디 지상에서의
나의 떠남을 너무 재촉하지는말고
좀 기다려 달라 부탁하고 싶답니다
나를 짐이 아닌 축복으로
여겨 달란 말은 강조하지 않을테니
모든 것을 시간 속의 섭리에 맡겨 두고
조금 더 인내해 달라 부탁하고 싶답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빚진
사랑의 의무를 실천하는 뜻으로라도
조금은 더 기다려 달라고 말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어설픈 편지라도 쓸 수 있으니
쓸쓸한 중에도 행복하네요
어쨋던 여러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내 처지에
오늘도 미안한 마음 감출수가 없지만
아직은 이렇게 살아 있음이 그래도 행복해서
가만히 혼자 웃어봅니다
이 웃음을 또
치매라고 하진 않을지 걱정되지만
그래도 살짝 웃어봅니다    

-  지금껏 치매어르신의 입장에서서 생각하기 보다는 내가 바라보는 치매어르신의 모습으로만 판단하고 행동 햇었던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럽네요. 저희 할머니께서도 치매가 계셨는데요, 그때 잘 못했었던 기억들이 떠올라서 이 시를 읽으면서 가슴이 시렸답니다.
많은 치매노인 가족 여러분도 이 시를 읽으면서 치매어르신들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모두모두 힘내세요!!!

-치매가족지원정보망 출처-